시간이 필요한 그 사람 :: 김정현 배우
몇 달 전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아주 이상한 기사를 만났다. 하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눈살을 찌푸렸다고 한다. 또 누가 기자들에게 미움을 샀을까 싶어 헤드라인을 클릭했다.아직도 새로운 게 있을까 싶더니 연예기사에 예상치 못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발표회 내내 화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던 배우는 기념사진 촬영 시간에 팔짱을 끼려는 여주인공의 손을 뿌리치며 모두가 부끄러워했다. 그 이유가 극중 시한부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벌어진 일이라는 소속사의 대답마저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화제에 오른 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MBC 수목드라마 시간. 세상이 자기 중심이 된다고 믿는 부잣집 말썽꾸러기, 아들과 가장 노릇을 하며 주경야독에서 꿈을 찾는 사탕 같은 소녀의 이야기는 진부하고 식상했다. 백화점 직원과 주인의 아들이 벌이는 황당한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말이 먹혀들지 혀를 찼다.그런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날이 늘었다. 문제아로 낙인찍힌 남자배우들은 정수호라는 인물과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모두 자연스러웠다. 아이러니, 웃는 것, 화내는 것, 가끔 부드럽게 웃는 것, 아파하는 것 모두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실감이 났다. 다행히 제 눈이 이상한건 아니었어요. 그를 비난하고 외면하는 듯했던 기자들의 마음도 등을 돌리는 듯했다. 점점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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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산에 가도 청수호라는 캐릭터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왜 이 배우가 제작발표회에서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배우, 이 작품으로 존재감 하나는 확실히 할 것이다, 2020년 연말 시상식에서 트로피 하나를 받으려고 했어요. 이런 인기와 관심이라면 몇 차례 연장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 배우에게 남자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은 어려웠을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정수호를 드라마 배역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방송국과 소속사는 배우의 드라마 하차를 알렸다. 이유는 이전과 같았다. 배우가 극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극심한 불면증과 구토 증세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그런데 신기하게 이해가 됐다.김정현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였을 수도 있고, 정수호라는 역할이 그녀에게 너무 딱 맞았던 탓일 수도 있다. 황당한 생각보다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한 한 배우가 내야 할 유명세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상대로 지난주 목요일 방송에서 정수호는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드라마에서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 결국 비극적인 방식을 피할 길은 없었던 것 같다. 이미 하차 소식을 들어 놀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황은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생각보다 빨리 정수호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어요.부디 김정현 배우가 회복의 시간을 잘 보내서 꼭 다시 돌아오길 바래요. 그리고 다음 드라마에서는 '깨방정'의 애아로 만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