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에세이,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예약해둔 도서가 도착했다기에 동네도서관에 들렀다.상호대차 신청한 도서가 도착했다거나 읽을 차례가 내게 돌아온 책이 있다거나 하여 도서관을 찾을 때면 신간 코너(도서관의 경우에는 신간이라기보다 새로 들어온 책 코너이지만)도 한 번 쓱- 둘러본다. 그러다 김정원 에세이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를 발견했다. 전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책이지만 뭔가 가깝게 느껴졌다. 후면 표지에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제목의 책을 쓴 작가들이 추천사를 남겨두었던 덕도 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김보통, 《진작 할 걸 그랬어》 저자이자 방송인인, 책발전소의 김소영 대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열풍을 일으킨 백세희 작가가 그들이었다. 이 작가들의 책은 아직이지만 그들 덕분에 책 한 권을 읽은 셈이다. 저자 김정원은 살면서 책 두세 권쯤 쓰고 싶었지만 우울증으로 첫 책을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한다. 영어 일간지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후 MBN, JTBC를 거쳐 현재 MBC 기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너무 애쓰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연습을 매일 하면서 살고 있다고. 책 뒷면에는 '뜬눈으로 뒤척이던 무수한 밤을 지나 무탈한 일상을 되찾기까지, 그 일 년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주변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을 보면 꽤나 오랜 치유의 시간을 보내왔고 보내고 있는 점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겪은 우울증의 강도가 경미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었던 우울증에 관한 책들에 비해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글은 쉽게 술술 읽혔다. 첫인상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글을 참 읽기 쉽고 편하게 쓰는 분인듯하다. 그가 겪어낸 시간은 지옥이었을텐데, 글을 읽는 이들마저 그 우울함에 젖어들게 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울증 극복, 참 쉽죠~?"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힘들었을텐데, 유쾌하게 쓰려고 노력하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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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에는 정신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날부터 마지막 진료를 보고 나오는 날까지의 기록이 담겨있다. 첫 진료 예약을 걸어놓고 막상 예약일이 되니 꼭 병원에 가야하나?, 그냥 집에 갈까?, 내가 미친걸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고 한다. 결국 도착한 병원의 첫 인상에 대한 이야기, 첫 진료일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도 들려준다. 정신과 진료 보기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용기가 되어 주지 않을까.책 제목이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라서 아내에게 우울증을 고백하는 일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예상했는데, 저자는 첫 진료를 보고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에게 전화하여 "여보, 나 우울증이래"라고 말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게.
내 얘긴 줄 알았다.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옮겨 적으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독심술 쓰지 않기.실제 상황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뇌는 자꾸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다. 오늘 아침에도 마트에서 계란을 사다가 머리 속에서 뜬금없는 시뮬레이션이 진행됐는데 '에잇! 쓸데 없는 생각!'하며 시뮬레이션을 멈추었다. 일단 내가 '쓸데없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본다. 가뜩이나 스스로 스트레스 잔뜩 주고 있는 요즘, 스트레스를 좀 덜어봐야겠다. 책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아래로 아픔을 마주하고 헤쳐가는 태도에 관하여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이 책 읽고나면 마음을 울린 구절, 마음에 드는 편이 저마다 다양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맨 처음 소개한 '예민한 레이다'와 아래에 소개할 '생각도 연습이다', ''다른' 사람은 '다르다'', '블랙리스트'가 그렇다. 이 네 편에 담긴 생각, 태도를 배우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눈에 띄게 생기를 찾으리라 확신한다. 레이다를 너무 확신하지 말고,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게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하려는 노력- 이 책에만 있는 내용인 것도 아니고 이번에 특별하게 깨달은 것도 아니지만, 이 책에 녹아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함께 읽고나니 조금 더 희망차다. 그가 무탈한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내 마음도 조금은 무탈해지기를 바란다.
이 책은 글 사이사이에 실린 일러스트의 느낌도 참 좋았기에 따로 모아 소개한다.일러스트레이션 황수연(instagram @yeoni_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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